육친논리로 바라보는 부부의 관리와 존중

팔자가 왜 이래|2022. 2. 16. 12:38

남자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는 아무래도 여자다. 여자 역시 음양이 부합하는 자연 원리에 따른 상대적인 관심은 다를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속에 딜레마가 담기는 것은 여자 마음의 본질이 관심을 받는 것이지만 그 다가오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관리가 되는 양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녀의 부합 관계를 도식적인 구성에 담아 음양이 부합하는 작용의 합리성이 부여된 구성이 시사하는 원리를 추론하여 그 작용하는 모습을 따져볼 수 있는 내용이 명리학의 육친논리이다. 

육친(肉親)은 기본적으로 부모, 형제, 자식과 같이 자신과 가장 밀접한 가족관계의 구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연장 선상에서 사회적인 인적관계와 그 시스템에까지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다.

육친 상에서 남자에게 여자는 재성(財星)에 해당한다. 재성의 현시적인 기본의미는 여자와 재물이며 이를 추구하는 활동력이 된다. 이 의미 역시 오행의 음양이 분화하는 원리에 따라 편재와 정재로 나뉘어 표현되는 양면성을 가진다. 그 구체적인 연결고리는 육친설명의 장에서 숙지할 내용이 된다. 
재성은 팔자 상에서 주체로 설정된 나 자신을 의미하는 일간이 오행의 생과 극의 작용을 하는 모습에서 극을 하는 육친 성이다. 

육친논리의 생과 극에서 내가 극을 하고 받는 것이 단순히 이기고 진다는 승패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선적인 금기사항이다. 내가 극을 하는 재성은 내가 뿌리를 두는 터전이다. 
사람의 인적관계에서 기본적인 터전은 아버지이다. 애벌레가 고치 상태를 벗어나 나비가 되는 것처럼 남자아이가 남자가 되면 그 독립적인 터전을 가꾸게 되는데, 이 터전이 아버지에서 나아가 아내로 전환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재성이 아버지와 아내로 의미가 복합되는 이유이다.

아내는 가정이란 터전에서 남편이 그 뿌리를 두게 되는 바탕이며 결과적인 주체이다. 만약 남자가 가장으로서 뿌리를 내린 아내의 행실이 엉망이라면 황무지에 싹을 불쑥 내민 씨앗과 같은 모습이 된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그 터전의 관리라는 의미에서 아내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에서 이어지는 가정에 대한 관리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현실적인 생활상과 마찬가지로 이 관리의 원리가 육친 상에서 적용되는 것은 여자에게 있어 남자는 관성이란 내용에 해당하며 그 연장선이 아내에 대한 남편이다.

관성은 기본적으로 관공서의 역할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 행정부, 사법부가 국민의 신상과 행실을 관리하고 그에 따른 안전을 보장하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관리하고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성이란 내용의 본래는 관심 즉 사랑과 존중이며, 그리고 성실을 의미한다. 

억압이 아닌 민주국가의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같이 존중을 바탕으로 한 관리가 이 원리의 기본이다. 하지만 관심이 상대적인 배려를 망각한 이기심에서 비롯된다면 억압이 된다. 그래서 이 관심과 관리란 것이 그리 만만한 포지션이 아니다. 국가라면 국민으로부터 주어지는 권위가 덧붙여져야 하는 것처럼 남녀의 완성체인 부부의 가정도 마찬가지다.

국정(國政)은 나라를 다스리는 모습이지만 가정(家政)은 집안을 관리하는 모습이다. 남자가 그 완성체인 남편으로서 가정(家政)의 가장이 되는 것은 그 터전인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성실한 가장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역할이 나아가는 것은 관생인(官生印)의 모습인 가정(家庭)으로 가정(家庭)은 그 집 안마당의 안정감을 말한다. 여기서 결과적으로 가정의 주체가 되는 안주인의 의미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성실한 남자를 만난 여자는 그 팔자에서 관성의 구성이 좋은 상태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구성에는 복합적인 흐름이 있기에 성실한 남편을 만난 여자가 꼭 그 자신의 행실까지 현모양처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 남자의 터전으로서 그 관리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남자의 성실한 권위를 인정하는 안정적인 내조에는 별 무관심으로 치마단 꽤나 짧게 하고 나돌아다니는 경우라면 남자는 다소 억압적인 권위를 행사하여 그 자제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 있어서 쉽사리 그리될 수가 없다. 이 여자는 공주 팔자가 아닌 여왕의 팔자인 것이다. 정관에 편재의 조합인 탓에 일방적인 입장에서 따진다면 이 구성이 여자에게는 최상이 된다.    

남자 역시 재성의 구성이 좋으면 여자를 잘 만날 확률이 높다. 단편적인 의미의 기술이 되지만 놀기만 일등인 한량이라도 여자 덕에 원만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남자를 만나는 여자의 대부분이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운명이 추구하는 팔자의 이상적인 어울림에서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는 재성과 재성의 어울림이다. 하지만 이 역시 친구처럼 서로의 개성을 즐기며 사는 세상 부부의 한 모습이다. 

물론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밥을 한다는 식의 이상적인 내용에 부합되는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다양한 개성과 그 관계 맺음이 어떤 이상적인 기준을 두고 단순히 좋다, 나쁘다 하는 그에 따른 상대평가로 다뤄질 문제는 아니다. 다만 팔자의 구성을 읽어가는 와중에 남편이 성실하고 아내가 그 성실을 북돋우고 존중하는 모습이 남녀의 완성체인 부부라는 음양 합일의 원리에서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할은 분명 절대적인 성별 기준이 아닌 의미 기준이 포함된다는 점에 유의가 필요하다. 이 역시 인위적인 상황에 따른 해석이 아닌 자연의 흐름이 보여주는 사상원리에서 전이된 사람의 네 가지로 분류되는 성정에 따른 이해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의 화합에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인물이 태어나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이는 성실과 존중이 영성의 이상적인 모습에 부합되는 이유에서이다. 

 

여자에게 관성이 남편이 되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가정이란 남자의 터전에서 주체로 작용하게 되는 아내 그 자체의 입장에 주어지는 것은 주체적인 자기관리라는 인성의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 결과적인 의미에서 바라보면 예전의 남존여비라는 인식은 자연의 원리가 부여한 남녀관계의 올바른 인식에서 제대로 동떨어진 파편적인 인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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