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의 정수리 이해

명리동네 이야기|2022. 2. 19. 23:52

사주팔자의 정수리 이해

보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명리학은 그 정색한 이름보다 사주팔자로 통하고 있다. 또한, 팔자라는 말은 운명이란 말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삶의 일상 속에서 맞이하는 인생의 화복에 대한 감정의 분출을 일러 ‘팔자타령’이란 표현을 하고 있다.

운명 타령의 제목이 된, 팔자를 구성하는 명리학의 언어는 

십간(十干. 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과 

십이지(十二支.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의 

한 바퀴 대응조합인 육십갑자(六十甲子)이다. 따라서 사주팔자란 육십갑자로 구성한 생년월일시를 四柱, 즉 네 기둥으로 상정(想定)하고 각 기둥을 이루는 간지 상하 두 글자의 합인 여덟 글자의 직설적인 표현이다.

이 여덟 글자를 자연의 기가 순환하며 구성된 자기 시점으로 상정하고, 이를 배경으로 삼아 그 태생적인 환경의 허실을 우선 가늠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인성의 성향, 사회적인 적응도 등을 유추함과 더불어 해마다 육갑의 순차에 따라 이어지는 세월 간지의 유동성을 적용하여 그 유동성에 의해 밀고 당겨지는 사주팔자의 상호 균형과 불균형의 여하에 따라 그 삶이 흐르는 모습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내용과 시기를 추론하여 그 삶이 인식하는 상황에 부합하고 상치하는 긍 부정의 여하를 가늠하게 된다. 따라서 명리학은 사주팔자를 인생의 바코드와 같이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팔자라는 구성을 취하여 작성된 표리가 있는 논리를 통하여 우리의 삶이란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전하려는 선철의 본의에서는 부수적인 사항이 될 뿐이다. 그 본의는 세상 삶의 출발선인 태생적인 환경의 허실이 적용되는 원인으로서, 각기의 인생이 부여된 모습을 드러내는 와중의 사회적인 소통과 불통에 대하여 추구하고 자중해야 할 자기 행위의 가치에 대한 논리적인 인식을 부여하는 것에 요점이 있다 보아야 마땅하다.

세상살이를 통하여 선보이는 개인의 추구행위가 사회의 소통가치에 대한 인식을 외면한 채 일방의 의지만으로는 영위될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세상이란 표현 자체가 우리의 대승적인 모습을 일컫는 말인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삶이란 상대적인 도리가 인식된 속에서 각기 욕망의 추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아 선철들은 자연의 흐름을 비추어낸 상호 유기적인 급부의 순환이 작용하는 모습을 직관적인 선상에서 보여주게 된 것이다. 

사주팔자의 이면에는 태극과 음양오행이라는 자연의 흐름에 대한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오행 속에는 사상이란 모습과 더불어 오행의 유기성을 표현하고 있는 상생과 상극이란 흐름이 담겨 있다. 이는 제각기 분리가 아닌 하나의 유동성에서 펼쳐지는 연계적인 흐름을 단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 된다. 

이 흐름을 이어가다 보면 느닷없이 “태극이 곧 무극이다”하는 허우대도사, 성긴 수염 빨로 한몫하려는 뜬구름 잡는 격의 대사가 작정을 두고 전면에 등장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이는 이 흐름의 궁극적인 이해에 해당하는 내용이 되므로 이쯤에서는 그러냐 하는 가벼운 손가락질 패스 정도의 관심만 표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즈음에서 입꼬리에 피식하는 묽은 웃음이 담길 수도 있을 것이다. 슬며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뭐! 그다지 대수로울 것도 없는 내용 줄기에 불과할 뿐임으로 개천절 태극기 게양하는 정도의 성의를 발휘하는 선에서 태극이란 개념으로부터 흘러내려 온 팔자 이야기가 추슬러지게 된다. 이를 위해 우선 태극의 자식이 되는 음양의 정수리 가르마부터 빗질을 시작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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